•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1
  • 삼국기(三國紀)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 경명왕(景明王)
  • 기원전 474년 무인 [경명왕 원년]

기원전 474년 무인 [경명왕 원년]

【후량 균왕(均王) 정명(貞明) 4년 ○ 후백제 견훤 27년 ○ 고려 태조 원년】

궁예의 여러 장수가 왕건(王建)을 옹립하여 왕으로 삼고 국호를 고려(高麗)라 하였다. 당시 왕건은 궁예의 장수가 되어 국경 지방과의 전쟁에서 여러 차례 현저한 공을 세워 지위가 관료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왕건에게 쏠리자 왕건은 화가 미칠까 두려워 자리에 있는 것을 즐겨하지 않고 매번 지방의 진(鎭)에 나아가기를 요구하였다. 그때 궁예는 반란한다고 무함하고 죄에 얽어매어 매일 장상(將相)을 죽였다. 그의 아내 강씨(康氏)가 만류하자 노하여 달구어진 쇳덩이로 그녀의 음부를 찔러 죽이고, 아울러 그의 두 아들도 모두 죽였다. 흉악한 일이 매일 자행되니 홍유(洪儒)·배현경(裵玄慶)·신숭겸(申崇謙)·복지겸(卜智謙) 등이 왕건을 추대하여 왕으로 삼았다. 궁예가 이 소식을 듣고 놀라 말하기를, “왕공(王公)이 얻었으니 나의 일은 끝났구나.” 하고 도망쳤으나, 얼마 못가 부양(斧壤) 사람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부양은 지금의 평강(平康)이다.】

○ 고려가 송악(松嶽)에 도읍하고, 관제(官制)를 제정하였다. 연호를 천수(天授)라 하고, 팔관회(八關會)를 설치하였다. 【신라에서 전해오던 행사이다.】

○ 처음 왕륭(王隆)이 송악의 남쪽에 집을 지었는데 하루는 승려 도선(道詵)이 와서 문밖에서 쉬다가 칭송하고 감탄하며 말하기를, “이 땅에서 마땅히 성인이 나올 것이다.”라고 하였다. 왕륭이 듣고 나가 맞아들이니 도선이 봉서(封書) 하나를 주면서 말하기를, “공은 내년에 반드시 귀한 아들을 얻을 것이오. 장성하거든 이 편지를 주시오.” 하였다. 기약한 날이 되자 과연 아이가 태어났는데 신비한 빛이 집에 드리웠다. 17살이 되었을 때 도선이 다시 찾아와 왕건을 만나보기를 청하여 출사(出師)하여 진(陣)을 치는 법과 천시(天時)와 지리(地理)의 이치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장성해서는 궁예에게 벼슬하여 시중(侍中)이 되었는데, 궁예가 정사를 어지럽히자 뭇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왕건에게 돌아갔다. 장사(將士)들이 추대하여 마침내 철원(鐵圓)에서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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