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 중서령(太師中書令)으로 치사(致仕)한 최충(崔沖)이 졸하였다. 시호는 문헌(文憲)이고 해주(海州) 사람이다. 풍채가 훌륭하고 품행이 곧고 단정하였다.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고 글을 잘 지었으며 5대의 조정을 거치며 벼슬을 하여 명망이 대단하였다. 현종 이후 전쟁이 겨우 종식되어 문교(文敎)에 겨를이 없었던 때에 최충은 후진들을 불러 모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니 학도들이 거리를 가득 메울 정도로 모여들었다. 마침내 9재(九齋)로 나누었는데, 과거에 응시하려는 자제들은 가장 먼저 9재(九齋)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에 학교가 세워진 것은 대개 최충으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