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2
  • 고려기(高麗紀)
  • 고종(高宗)
  • 기원전 161년 신묘 [고종 18년]

기원전 161년 신묘 [고종 18년]

몽고 원수 살례탑(撒禮塔)이 침입해 와서 함신진(咸新鎭)을 포위하자 수신(守臣) 김한(金僴)과 조숙창(趙叔昌)이 항복하였다.

○ 몽고군이 철주(鐵州)에 이르자 사로잡은 낭장(郞將) 문대(文大)에게 “진짜 몽고다. 속히 항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소리치라고 시켰으나, 문대는 “가짜 몽고다, 항복하지 마라.” 하고 소리쳤다. 【이에 앞서 동진(東眞) 사람이 거짓으로 몽고의 의관을 하고 변경을 노략질하였던 까닭에 당시 사람들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였다.】 몽고군이 다시 소리치라고 하자 역시 전과 똑같이 하므로 마침내 문대를 죽였다. 성을 향한 공격이 더욱 급박하자 판관(判官) 이희적(李希勣)이 스스로 목을 베어 죽었다. 몽고인들이 그 성을 도륙하였다.

○ 몽고 병사들이 철주를 도륙하자 서북면 병마사(西北面兵馬使) 박서(朴犀)가 장군 김경손(金慶孫) 등과 함께 병사들을 거느리고 귀주(龜州)에 모여 몽고 병사들이 크게 몰려오는 것을 나누어 막았다. 김경손이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가 잘못 날아온 화살에 맞아 팔에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불구하고 직접 북 치기를 그치지 않으니 몽고 병사들이 퇴각하여 달아났다.

군을 정비하고 쌍소금(雙小琴)을 불며 돌아오니 박서가 절하고 맞이하며 성을 지키는 일을 일체 김경손에게 일임하였다. 몽고 병사들이 성을 포위하고 30일 동안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공격했지만 박서와 김경손이 번번이 기회를 타고 응변하니 몽고 병사들이 끝내 이기지 못하였다. 이에 퇴각하여 남쪽으로 내려갔다.

○ 몽고 장군이 첩지를 평주(平州)에 보내오자 평주에서 그 자를 가두었다. 【그 첩지에 이르기를, “우리 군사가 처음 함신진(咸新鎭)에 이르렀을 때 영접하며 항복한 자는 모두 죽이지 않았다. 너희 나라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우리는 끝까지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항복하면 병사를 동진(東眞)으로 돌려 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나라에서는 진짜 몽고 병사라는 것을 믿기 시작하였다.】

○ 몽고 병사가 평주에 이르러서 평주 사람들이 첩지를 가지고 온 사람을 가둔 것을 빌미로 삼아 평주성을 습격하여 도륙하고 경성(京城) 근처에까지 진격해왔다. 어사 민희(閔曦) 등을 파견하여 몽고 군사에게 가서 화친을 청하였다.

○ 몽고 병사가 다시 귀주(龜州)를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몽고 병사 가운데 한 노장이 있었는데 성루의 병기를 둘러보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천하를 두루 다니면서 일찍이 공격을 이처럼 심하게 당하고도, 끝끝내 항복하지 않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성 안의 제장(諸將)은 후에 반드시 장상(將相)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 외로운 성과 잔약한 병졸로 천하의 사납고 갈수록 강성해지는 오랑캐를 막고 동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여 나라가 우뚝 솟아 있는 산악과 같이 확고하였다. 우리 동방에서 성을 잘 지킨 자로 안시성(安市城) 이후 또 귀주의 박서와 김경손이 있으니 공이 적지 않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