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환조를 동북면 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삼았다. 우리 환조가 동북면에서 훙하였다. 【부음을 듣고 왕이 심히 슬퍼하였고, 사대부들이 모두 놀라 “동북에 사람이 없다.”라고 하였다.】 우리 태조 대왕(太祖大王)을 동북면 상만호(東北面上萬戶)로 삼았다.
○ 홍건적이 다시 대거 몰려와 침략하자 왕이 남쪽 복주(福州)로 달아났다. 홍건적 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주원수(朱元帥) 등이 군사 20만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오자, 조정에서 안보(安保) 등을 파견하여 막게 하였으나 패하였다. 마침내 적이 멀리 추격하여 동쪽으로 내려오므로, 왕이 이 사실을 알고 급히 태후를 모시고 남쪽으로 피신했다. 도성 백성들이 짓밟히고 깔리니 통곡하는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시종하는 관리는 오직 홍언박(洪彦博) 등 수십 인이 따랐다. 왕이 임진(臨津)에 이르러 산하를 돌아보며 이색(李穡)에게 말하기를, “풍경이 이와 같으니 경들은 마땅히 연구(聯句)를 지을 만하다.”라고 하였다. 【복주(福州)는 지금의 안동(安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