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8년 【이태왕 12년】 에 일본 군함 운요호(雲揚號)가 근해를 통과하다가 식수(食水)를 얻기 위해 강화도 앞바다에 왔는데, 뜻밖에 포대(砲臺)에서 포격을 받았기 때문에 이에 응전하여 부근의 포대를 함락했다. 이듬해 일본의 사절이 와서 이 일에 대해 담판했다. 조선 정부는 그 죄에 대해 사과했으며, 또한 위원(委員)으로 하여금 일본의 사절과 강화부(江華府)에서 만나 수호조약(修好條約)을 체결하게 했다. 세간에서는 이를 강화조약(江華條約)이라고 한다. 얼마 후 일본은 공사관(公使館)을 경성(京城)에 설치하고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를 공사로 임명하여 부임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