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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 강화도 사건과 임오 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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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壬午)의 정변

메이지 15년 【이태왕 9년, 임오년】 에 군영(軍營)의 병사들이 오랫동안 식량을 받지 못하는 등의 일로 폭동을 일으키고 왕궁으로 난입했다. 왕비는 신변이 위태로웠지만 간신히 도피했으며, 민씨 일족 등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대원군은 급히 일어나 궁중으로 들어가 다시 정권을 장악했다. 이 난으로 일본 공사관도 역시 폭도들에 의해 불탔으며, 일본인들 중 살해된 자들이 적지 않았다. 공사인 하나부사 요시모토는 한때 귀국했다가 다시 돌아와서 교섭을 벌였으므로, 조선 정부는 일본과 조약을 맺고 흉악한 무리들을 체포하여 이들을 처벌했으며, 사절을 파견하여 일본에 사죄했고 또한 배상금을 물었다. 이를 임오(壬午)의 정변(政變)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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