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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불교 전래의 기사(記事)

삼국의 불교 전래에 관해 『삼국사기』에 기록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소수림왕 2년 여름 6월에, 진(秦)나라 왕 부견(苻堅)이 사절 및 부도순도(浮屠順道)를 보내, 불경(佛經)과 경문(經文)을 보냈다. 왕은 사신을 보내 감사를 표시하고, 방물(方物)을 바쳤다.

  【소수림왕에 대한 것은 본과 비고 1 「삼국 문학의 전래」에 있다.】

(2) 침류왕(枕流王) 원년 가을 9월에, 호승(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진(晉)나라에서 왔다. 그를 왕궁 안에서 맞이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했다. 불법(佛法)이 이때 시작되었다.

  【침류왕은 백제 제15대 왕으로서, 그 원년은 닌토쿠(仁德) 천황 72년에 해당한다. 소수림왕 2년과 2년 차이가 있다. 이때 중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어, 북쪽은 진(秦)이었고, 남쪽은 동진(東晉)이었다. 그런데 불법은 고구려에는 북쪽의 진나라로부터 들어갔고, 백제에는 남쪽의 동진으로부터 전래되었다.】

(3) 법흥왕(法興王) 15년에 처음으로 불법을 행했다. 처음에 눌지왕(訥祗王) 때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에서 일선군(一善郡)으로 왔다. 이 군(郡) 사람들은 모례(毛禮)의 집안에 굴을 파고 그를 안치했다. 【중략】 갑작스러워 돌아갈 곳을 알 수 없었다. 비처왕(毘處王) 때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도착했다. 시자(侍者) 세 명과 함께 역시 모례의 집에 왔다. 그 모습이 묵호자와 비슷했다. 머문 지 수년 만에 병이 나 죽었다. 그 시자 세 명은 남아서 살면서, 경률(經律)을 강독했다. 이따금 이들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때 왕도 역시 불교를 일으키려고 했다. 여러 신하들은 불교를 믿지 않고, 이러저러한 말들이 많았다. 왕은 이를 책망했다. 가까운 신하인 이차돈(異次頓)이 상주하여 말하기를, “청컨대 소신(小臣)을 참수하심으로써, 여러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을 정하시옵소서.”라고 했다. 【중략】 마침내 관리에게 명하여 막 그를 죽이려고 했다. 이차돈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법(法)을 위해 형(刑)을 받는다. 부처가 만약 신이라면, 내가 죽을 때 반드시 이상한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를 참수하자 피가 끊임없이 솟구쳤다. 그런데 피의 색깔이 하얀 우유와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다시 불사(佛事)를 비난하고 헐뜯지 않았다.

  【눌지왕은 신라 제19대 왕이고, 비처왕은 제21대 소지왕(炤知王)의 다른 이름이다. 법흥왕은 제23대 왕으로서, 그 15년은 고토바(繼體) 천황 22년에 해당한다. 백제 침류왕 원년으로부터 144년 후이다. 또 백제가 일본에 불상(佛像)과 경론(經論)을 바친 긴메이(欽明) 천황 13년은 신라 법흥왕 15년으로부터 겨우 24년 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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