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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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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의 살수에서의 승리

살수의 전투는 영양왕 23년 가을 7월에 있었는데 수나라 장수 우문술(宇文述), 우중문(于仲文) 등은 대군을 이끌고 와서 압록강의 서쪽에서 마주했다. 왕은 대신(大臣) 을지문덕을 보내 수나라의 군영(軍營)에 참배하고 거짓으로 항복하면서 그 허실(虛實)을 살폈다. 수나라 장수는 을지문덕을 사로잡으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여러 장수들이 강을 건너 을지문덕을 추격했다. 을지문덕은 적을 지치게 하려고 매번 전쟁에서처럼 쉬지 않고 달렸다. 수나라 장수는 마침내 살수를 건너 평양성에서 30여 리 떨어진 곳에 이르러 군영을 차렸다. 을지문덕은 다시 사신을 보내 거짓으로 항복했다. 수나라 장수는 장병들이 지쳐 있는 데다 평양이 험준하여 쉽게 함락시킬 수 없음을 알고 곧 군대를 철수했다. 살수에 이르러 군대의 절반 정도가 강을 건넜을 무렵에 을지문덕은 고구려군으로 하여금 수나라의 뒤쪽 군대를 공격하도록 했으므로 적의 군대는 일시에 궤멸되었다. 처음에 수나라 군대가 요동에 이르렀을 때, 군대의 규모는 9군(軍) 30만 5천 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돌아갈 때에는 고작 2천 7백 명이었다고 전해진다. 양제는 크게 노하여 다시 친히 군대를 이끌고 요동에 이르렀지만, 고구려 군대가 영성(嬰城)을 굳게 지켜 정복할 수 없게 되자, 마침내 군대를 철수했다. 고구려의 왕도 역시 사신을 보내 화의를 요청하여 한때 안정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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