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1
  • 10. 고려 3
  • 비고(備考)
  • 이색(李穡)

이색(李穡)

이색(李穡)은 자가 영숙(穎叔)이며 호는 목은(牧隱)이다. 찬성사(贊成事) 이곡(李穀)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원나라에서 살면서 학문을 배워 견문이 넓고 학식이 풍부하며, 또한 시문(詩文)을 잘했다. 아버지의 상을 당해 원나라에서 돌아와, 임금에게 글을 올려 당시의 폐정(弊政)을 논하고, 이어서 원나라가 개성에 설치한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의 유관(儒官)이 되었으며, 또한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을 겸직했다. 이색은 매일 명륜당(明倫堂)에 앉아 가르쳤으며, 강의가 끝나면 서로 논쟁을 벌이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학자들이 대단히 많이 모였으며, 정주(程朱)의 학문이 크게 일어났다. 폐왕(廢王) 우(禑)는 이색을 사부(師傅)로 삼았으며, 한산군(韓山君)에 봉했다. 조민수(曺敏修)가 우를 폐위하고 창(昌)을 왕으로 세우려 하여, 당시의 이름난 유학자인 이색의 말을 빌리려고 몰래 그것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이색은 그것을 찬성했다. 이 때문에 조민수가 죄를 짓게 되자 이색도 역시 그에 연루되어 파직되어 함창(咸昌)으로 유배되었다. 공양왕(恭讓王)이 즉위하여 일단 용서받고 돌아왔지만, 정몽주가 죽임을 당하자 그에 연루되어 그의 둘째 아들과 함께 파직되어 유배되었다가, 여흥(驪興)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69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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