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1
  • 10. 고려 3
  • 비고(備考)
  • 정몽주(鄭夢周)

정몽주(鄭夢周)

정몽주(鄭夢周)의 자는 달가(達可)이며, 호는 포은(圃隱)이다. 공민왕 9년에 과거에 응시하여, 선발된 첫 번째 사람이다. 정몽주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시문에 뛰어났으며, 정주(程朱)의 학문에 정통했다. 때문에 동방이학(東方理學) 【즉 정주(程朱)의 학문】 의 시조라고 불렸다. 벼슬은 진현관(進賢館)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으며, 성균관 대사성을 겸직했다. 정몽주는 성격이 호탕하고 절의(節義)를 숭상하여, 원나라에 사신으로 간 적도 있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힘쓴 적도 적지 않았다. 또 폐왕 우 시기에, 일본 【하카타(博多)】 에 사신으로 가서 침략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고, 일본의 유학자들과 만나 글로써 이름을 알렸다. 공양왕 때, 정몽주는 대명률(大明律)과 원나라와 고려의 법령을 참작하여 새로운 법령을 지어 올렸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위세와 덕망이 나날이 높아지는 것을 꺼려했으며, 또한 그가 야심을 품고 있다고 의심했는데, 비밀리에 조준(趙浚), 남은(南誾), 정도전(鄭道傳) 등이 이성계를 추대할 계책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틈을 타 일을 도모하려고 했다. 그러나 거꾸로 반대파들이 먼저 일을 도모했다. 공양왕 4년에 이성계가 세자 석(奭)이 명나라에 가서 조현(朝見)을 마치고 돌아오는 것을 맞이했으며, 이어서 해주에서 사냥을 하다가 낙마했으므로, 정몽주는 이성계의 집으로 가서 그를 문안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이방원(李芳遠) 등에게 암살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56세였다.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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