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2. 태종(太宗) 및 세종(世宗)
  • 비고(備考)
  • 여진과의 관계
  • 압록강 상류 방면

압록강 상류 방면

고려 말에, 갑산(甲山) 【함경남도】 및 압록강 연안의 초산(楚山) 【평안북도】 은 이미 고려의 영토 안에 편입되었지만, 국경은 아직 강계(江界) 【평안북도】 에 이르지 못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서 점차 북방을 개척하여 태종 원년에 이 지방을 석주(石州)라고 불렀으며, 3년에 강계부(江界府)라고 고쳐 불렀고, 압록강 상류의 연안 지방은 모두 조선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세종 때에 이르러 여진(女眞) 사람들이 자주 영토 안으로 침입해 왔으므로, 15년에 여연(閭延)과 강계 사이에 자성군(慈城郡)을 설치하였고, 같은 해에 평안도 절제사(節制使) 최윤덕(崔潤德)이 파저강(婆豬江) 【만주에 있으며, 지금의 통가강(佟佳江)】 의 여진족을 정복하였으며, 19년에 절제사 이천(李蕆)이 다시 그들을 정벌하였다. 그리하여 압록강 상류 지방에는 여연, 자성, 무창(茂昌), 우예(虞芮) 등 4군(郡)을 설치하고, 이 방면의 지배를 완전히 이룩하였다. 그러나 후에 세조 때에 이르러 여진이 다시 발호하자, 결국 4군 땅을 포기하고, 그곳 백성들을 귀성(龜城) 【평안북도】 강계(江界) 두 부(府)의 경계 안으로 이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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