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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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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世祖) 즉위의 사정(事情)

세종(世宗)에 이어 즉위한 문종(文宗) 【제5대】 은 세종의 적장자(嫡長子)였다. 세종은 아들이 많았는데, 적출(嫡出)의 왕자 【적출을 ‘대군(大君)’이라고 부르고, 서출(庶出)을 ‘군(君)’이라고 부른다.】 만 해도 문종 외에 일곱 명이 있었다. 문종은 재위한 지 겨우 2년 만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문종이 임종을 앞두고, 세자가 나이가 어리고, 숙부에 해당하는 대군들이 매우 많아, 훗날 혹시 만에 하나라도 변고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우의정 김종서(金宗瑞) 등에게 유명(遺命)하여 세자를 보좌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세자가 즉위하였는데 그가 곧 단종(端宗)으로 이때 나이가 12세였다. 단종의 숙부인 일곱 명의 대군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수양대군(首陽大君) 【이름은 유(瑈)】 과 그의 아우인 안평대군(安平大君) 【이름은 용(瑢)】 이었다. 안평대군은 학문을 좋아하고 서화(書畵)에 능하여 그 명성이 높았으며, 또한 시문(詩文)에도 뛰어났으므로 많은 문사(文士)들이 그의 집에 드나들며 그와 사귀었다. 그에 반하여 수양대군은 무(武)를 좋아하고, 한명회(韓明澮)를 위주로 하는 많은 무사(武士)들과 사귀었으므로, 두 대군은 보이지 않게 서로 불화하였다. 이 때문에 수양대군은 한명회 등과 모의하여, 황보인, 김종서 등이 안평대군을 끌어들여 왕위를 노린다는 핑계로 황보인, 김종서 두 사람과 그 일파를 살해하였다. 안평대군도 역시 이 일에 연루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이리하여 왕은 수양대군을 영의정에 임명하고 국정을 위임하였다. 이어서 영의정 【수양대군】 과 좌의정 정인지(鄭麟趾)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안평대군을 죽였다. 【원년】 이리하여 수양대군은 사실상 국정을 좌우하였지만, 왕은 재위한 지 고작 3년 만에 수양대군에게 양위하였다. 그가 곧 세조 【제7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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