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가 즉위하기 전후에는 위와 같이 분란이 있었다. 이 때문에 왕의 혈육을 죽이기까지 하는 불행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왕은 온통 마음을 정치에 기울였으며, 농사를 권장하고, 무(武)를 장려하였으며, 또한 제도를 크게 정비하였으므로, 태종과 세종의 치세(治世)를 이어 나라의 기초를 공고히 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왕 시대는 북쪽이 약간 안정되지 못하였는데, 야인(野人) 【여진족】 들이 여러 차례 압록강 상류 지방과 두만강 상류 지방을 유린하였다. 왕은 앞의 왕들과는 달리 크게 불교를 믿어, 경성에 원각사(圓覺寺)를 건립하고, 큰 종(鍾)을 주조하였으며, 13층 탑을 지었는데, 그 구조가 웅장하고 화려하여 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후에 이 절은 폐기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터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