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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학(太學)

태학은 신라 시대에도 설치되었다. 고려 성종(成宗) 때 태학을 설치하고 국자감(國子監)이라고 불렀으며, 후에 성균관(成均館)이라고 불렀다. 【충렬왕(忠烈王) 34년】 조선 태조는 즉위한 후 6년에 수도 한성(漢城)의 동북쪽 모퉁이 숭교방(崇敎坊)에 상(相)을 보아 태학의 터를 잡아 공사를 시작하여 다음해에 완성하였다. 고려 시대의 호칭을 이어받아 성균관이라고 불렀다. 그 중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을 문묘(文廟) 즉 대성전(大成殿)이라고 불렀고, 학문을 익히는 곳을 명륜당(明倫堂)이라고 불렀으며, 유생들이 기거하는 곳을 재(齋)라고 불렀다. 태조는 여기에 학전(學田) 및 노비를 주었는데, 이후의 여러 왕들도 역시 전결(田結)을 지급한 것이 적지 않았다. 또 전라남도 연해의 여러 섬들의 어장(漁場)을 성균관에 주어, 거기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선비를 양성하는 비용을 충당하였다. 성균관에 지사(知事) 【1명】 동지사(同知事) 【2명】 대사성(大司成) 【1명】 좨주(祭酒) 【2명, 후에 사성(司成)으로 고쳤다.】 사예(司藝) 【3명】 사업(司業) 【2명, 나중에 설치하였다.】 직강(直講) 【4명】 전적(典籍) 【13명】 등의 관직을 두었다. 성균관 유생의 정원은 2백 명으로, 모두 진사나 생원의 자격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자격을 가진 자의 정원이 부족할 때는 사학의 생도로 보충하였으며, 또 후대에 이르러 일정 부분 무자격자도 정원에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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