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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趙光祖)

조광조의 자(字)는 효직(孝直)이고, 한양 사람이다. 호는 정암(靜庵)이다. 어릴 때 아버지의 임지(任地)인 어천(魚川) 【평안북도】 에 가서 성장하였다. 때마침 김굉필이 유배되어 희천(熙川)에 오자, 그에게 배웠다. 김굉필은 김종직의 뛰어난 제자였으므로, 조광조는 곧 김종직의 학파를 계승한 사람이었다. 조광조는 지조가 굳었으며 경술(經術)에 밝았다. 항상 세상의 도덕과 인심이 황폐해지는 것을 개탄하면서, 그것을 구제할 뜻이 있었다. 중종(中宗)은 조광조를 부제학(副提學)에서 대사헌(大司憲)에 발탁하여 국정을 자문하기에 이르렀는데, 현량(賢良)을 등용하여 치적을 이루었으며, 풍속을 바르게 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그러나 그가 오로지 도학(道學)을 기준으로 삼는 완고한 사상과 급격한 개혁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으며, 마침내 남곤(南袞), 심정(沈貞) 등의 무고로 체포되었다. 이때 여러 유생들이 그를 위해 억울한 죄를 호소하였는데 광화문 밖에 모인 사람들이 천여 명에 이르러 대단히 소란스러웠다. 그는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간언으로 사형에서 한 등급을 감형 받아 능주(綾州) 【전라남도】 로 유배되었지만, 고작 2개월이 지나 정광필이 실각하게 되어 마침내 사약을 받았다. 이때 그의 나이 38세였다. 유저(遺著)로 『정암집(靜庵集)』 15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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