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이 세상을 떠나고 명종(明宗) 【제12대】 이 즉위하였다. 왕은 아직 나이가 어렸으므로 모후(母后) 【문정왕후(文定王后)】 가 섭정하였다. 왕후는 독실하게 불교를 믿어 널리 명승(名僧)들을 구하였다. 강원도 감사(監司) 정만종(鄭萬鍾)이 인제군(麟蹄郡) 백담사(百潭寺)의 승려 보우(普雨)를 천거하였다. 보우는 모후의 신임을 크게 받아 승과(僧科)와 도승(度僧) 제도를 부활시켰으며, 무차대회(無遮大會)를 크게 여는 등 매우 많은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렇지만 불교는 유학이 융성하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다. 대간(臺諫) 및 유생들은 간사한 승려 보우를 주살해야 한다고 규탄하였고, 석학(碩學) 이이(李珥) 【율곡(栗谷)】 와 같은 사람도 그의 죄를 거론하며 그의 육신을 찢어 죽여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기에 이르렀다. 때마침 같은 왕 20년에 모후가 승하하고, 보우는 제주로 귀양가 죽었으므로, 불교는 부활의 조짐만을 보였을 뿐이고 다시 일어설 수는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