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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에 복속되다

남한산성이 청나라 군대에 포위된 지 45일 【14년 12월 16일부터 15년 정월 30일까지】 이 되자, 성 안에는 식량이 거의 바닥나고 여러 도(道)의 지원군은 도착하지 않아, 그들이 나아가 싸워서는 패하지 않을 수 없는 형세였다. 따라서 성 안에서는 화전(和戰) 양론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이러는 사이에 강화(江華)는 청나라 군대에 함락되어 빈궁과 여러 왕자들은 모두 붙잡혔으므로, 결국 어쩔 수 없이 국왕과 세자는 성을 나와 청나라 군대에 항복하였다. 태종은 수항단(受降檀)을 삼전도(三田渡)에 설치하고 이곳에서 군신(君臣)의 예로써 인조의 항복을 받았으며, 이튿날 세자 및 그의 동생인 봉림대군(鳳林大君) 【후에 효종(孝宗)이 된다.】 등을 인질로 삼았고 빈궁과 여러 왕자들은 모두 북쪽으로 돌려보냈다. 이상 전후(前後) 두 번의 청나라 군대의 침입으로 조선은 심하게 황폐해졌는데, 그중 몽고 병사들이 가장 심하게 폭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조선은 영원히 청나라에 대해 속국의 예를 취하였다. 이때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이에미츠(德川家光) 쇼군의 시대였다. 【일본 간에이(寬永) 14년, 인조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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