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8. 영조(英祖) 및 정조(正祖)
  • 비고(備考)
  • 정약용(丁若鏞)

정약용(丁若鏞)

정약용(丁若鏞)은 자(字)가 미용(美庸)이며, 처음에는 사암(俟菴), 나중에는 다산(茶山)이라는 호로 불렸으며, 또는 여유당(與猶堂)이라고도 불렸다. 영조 38년에 전라도 나주(羅州)에서 태어났다. 정조 초기에 생원(生員)에 합격하였고 얼마 안 되어 문과(文科)에 등제하였다. 관직에 나아가 승진을 거듭하여 부승지(副承旨)가 되었다. 정약용은 그의 형 정약종과 함께 서양의 학문을 좋아하였으므로 하루아침에 좌천되어 금정(金井) 찰방(察訪)이 되었지만, 다시 서울로 돌아가 승지에 임명되었다. 순조(純祖) 원년에 청나라 사람 주문모(周文謨)가 양학(洋學)을 제창하다 체포되고, 그 종교를 받드는 많은 사람들은 많은 사형에 처해졌다. 정약종도 실제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정약용은 형의 죄에 연좌되어 결국 강진(康津) 【전라남도】 에 유배되었지만, 19년 후에 사면되어 서울로 돌아왔으며, 헌종 2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의 나이 75세였다. 시호를 문도(文度)라고 한다. 정약용은 성호(星湖) 【이익(李瀷)】 학파를 배워 문장에서 오묘함을 터득하였으며, 경(經), 사(史), 자(子), 집(集) 모두에 능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식견이 고매하여 근대 고증학(考證學)의 태두(泰斗)라고 칭송된다. 그는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에 열심히 노력하여 오로지 독서와 저술에 뜻을 기울였다고 한다. 저서는 매우 많은데, 『대한강역고(大韓疆域考)』·『목민심서(牧民心書)』·『흠흠심서(欽欽心書)』·『경세유표(經世遺表)』·『제경강의(諸經講義)』 등 수백 권이 있다. 모두 세상에서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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