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10. 강화도 사건과 임오 정변(壬午政變)
  • 강의요령[說話要領]
  • 강화도 사건(江華島事件)

강화도 사건(江華島事件)

일본과 조선의 관계는 앞 과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아무런 결실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메이지(明治) 8년에 우연히 일본 군함인 운요호(雲揚號)는 청나라로 가던 도중에 조선 근해를 통과하다가 식수(食水)가 부족하다는 보고를 받고 식수를 얻기 위해 강화도 앞바다에 와서 정박하였다. 그러나 그 부근에 있는 포대(砲臺)의 수비병들이 갑자기 포를 발사하여 배를 공격하였다. 일본 군함은 이에 응전하여 영종도(永宗島) 포대를 함락시켰다. 【9월】 이리하여 일본 정부는 곧바로 사절을 파견하여 이 사건에 관해 조선 정부에게 담판하도록 하였다. 일본 사절이 온 것은 이듬해인 메이지 9년 1월이었다. 이때 대원군의 세력이 이미 쇠약해졌으므로 조선 정부는 결국 일본과 수교하기로 결정하고, 일본에 대해 그 죄를 사과하였으며, 위원을 선정하여 일본 사절과 강화부(江華府)에서 회합하여 수호조약(修好條約)을 체결하였다. 이를 강화조약(江華條約)이라고 한다. 【메이지 9년 2월, 이 태왕 13년】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정부는 경성에 공사관(公使館)을 설치하고,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를 공사(公使)로 주차(駐箚)하게 하였다. 【메이지 13년 4월, 이 태왕 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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