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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청나라의 전쟁

메이지 27년 【이 태왕 31년】 에 전라도 고부(古阜)의 인민들이 군수(郡守)의 학정을 견디지 못하여 마침내 난을 일으켰다. 이에 앞서 경주(慶州) 사람 최제우(崔濟愚)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동학(東學)을 주창하였다. 【제25대 철종 때】 동학은 서학(西學) 즉 기독교가 널리 보급되는 것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인데, 정부는 사설(邪說)로 간주하여 이를 금지하고, 최제우는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렇지만 이 종교는 언제부터인가 삼남(三南) 지방에 널리 퍼져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졌다. 고부에서 폭도들이 일어났을 때 그 지역의 동학당에 전봉준(全琒準)이라는 사람이 있었으며, 미리부터 관리들의 폭압에 분노하는 틈을 타 무리를 모으고 마침내 진격하여 전주를 함락시키고 거기에 웅거하였다. 여러 인민들이 메아리처럼 그에 호응하여 세력이 매우 강력하였다. 정부는 군대를 보내 그들을 토벌하도록 하였지만 쉽게 당해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청나라 정부에 원조를 요청하였다. 청나라는 속국의 난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많은 인원의 군대를 보내 아산(牙山)에 상륙하게 하였다. 일본은 그때까지 정변이 있을 때마다 큰 손해를 입었으므로, 곧장 공사관과 거류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 인천에 상륙시켰다. 이리하여 일본은 청나라와 협력하여 조선의 내란을 진압하고 내정을 개혁시킬 것을 청나라 정부에게 권하였지만, 그들은 이를 거부하고 단지 일본의 철군만을 요구하였으며, 그들의 군함이 7월에 우리 군함을 풍도(豐島) 앞바다에서 포격하여 전쟁의 단서를 열었다. 【7월 25일】 우리 군함은 이에 응전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더 나아가 두 나라가 교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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