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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 갑신정변(甲申政變)과 갑오혁신(甲午革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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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이지(明治) 27〜28년의 전쟁
  • 성환역(成歡驛)의 전투

성환역(成歡驛)의 전투

7월 25일에 조선 정부는 청나라 군대의 철퇴에 대한 일체의 일을 경성 주재 일본 공사에게 위탁하였다. 오시마(大島) 혼성여단장(混成旅團長)은 이에 휘하의 3천여 명과 산포(山砲) 8문(門)을 이끌고 남쪽으로 진격하는 길에 올랐다. 이때 청나라 군대는 아산의 전방 약 7리(里) 되는 성환(成歡) 【충청남도】 으로 진출하여, 섭사성의 지휘 하에 견고한 보루(堡壘)를 구축하고 우리를 기다렸다. 우리 군대는 찌는 듯한 더위를 무릅쓰고 과천(果川), 【경기도】 수원(水原), 【위와 같음】 진위(振威), 【위와 같음】 칠원(七原), 【위와 같음】 등에서 야영을 하면서 성환의 북쪽 약 1리 반 정도 되는 소사장(素砂場) 【위와 같음】 에 도착하였다. 오시마 여단장은 이곳에서 척후병의 상세한 보고를 받고 곧장 군대를 좌우 두 부대로 나누어, 타케다(武田) 중좌 【히데노부(秀山)】 로 하여금 오른쪽 날개를 통솔하게 하고 자신은 왼쪽 날개의 장수로서 아산(牙山)으로 진군하였다. 성환의 전면은 1리(里) 남짓 되는 논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 줄기 냇물이 그 가운데를 관통하여 서쪽의 아산만으로 흘러간다. 이 냇물과 공주(公州) 가도(街道)의 교차점은 바로 유명한 안성(安城) 나루이다. 우리의 모든 군대는 29일 오전 0시에 행동을 개시하였다. 타케다의 부대의 전위(前衛)인 마츠자키(松崎) 대위 【나오미(直臣)】 는 안성 나루로 진격하였는데, 적군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명예롭게 전사하였다. 이어서 타케다 부대는 냇물을 건너 곧바로 성환으로 다가갔다. 한편 오시마 여단장은 타케다 부대와 함께 적의 오른쪽 날개를 공격하여 온 힘을 다해 싸웠으며, 우리 군대는 득의양양하게 함성을 지르며 적진에 돌입하였으므로, 적의 진지는 모두 함락되었다. 이때가 오전 7시 30분이다. 전투는 최초의 전투로부터 고작 2시간 반 후에 이루어졌다. 우리 군대는 여전히 북쪽으로 추격하여 아산으로 진격하였다. 생각건대 적군은 성환에서는 이미 패하였지만 아산은 본영(本營)이 있는 곳이었으므로 사력을 다해 방어할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우리 군대가 아산에 들어섰을 때, 적은 그림자도 없고 군량(軍糧)과 군수품을 산에 쌓아놓은 채 이미 홍주(洪州) 【충청남도】 방면으로 퇴각한 상태였다. 이 전투에서 우리 군대의 사상자는 장교 이하 고작 82명이었으며, 청나라 군대의 사상자는 5백 명을 밑돌지 않았다. 이리하여 일본과 청나라의 최초의 육전(陸戰)은 우리 군대의 승리로 돌아갔으며 8월 5일에 모든 군대가 경성으로 개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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