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11. 갑신정변(甲申政變)과 갑오혁신(甲午革新)
  • 비고(備考)
  • 메이지(明治) 27〜28년의 전쟁
  • 황해(黃海)의 해전(海戰)

황해(黃海)의 해전(海戰)

우리 해군은 개전(開戰) 후 곧장 장직로(長直路) 【전라남도 서남쪽 모서리의 군도(群島)인 완도군(莞島郡)】 를 근거지로 삼아 조선 연안의 경비를 맡거나, 혹은 육군 운송선의 호위를 담당하거나, 혹은 멀리 위해위(威海衛)를 포격하여 적 군함을 유인해 내려고 하였다. 9월 16일에 연합함대 사령장관 해군 중장 이토 쓰게유키(伊東祐亨)는 요시노(吉野), 나니와(浪速), 다카치호(高千穗), 아키츠시마(秋津洲), 【이상은 제1유격 함대】 마츠시마(松島), 하시다테(橋立), 이츠쿠시마(巖島), 치요다쿠(千代田)·후소(扶桑), 히에이(比叡), 【이상은 본대(本隊)】 아카기(赤城) 및 무장상선(武裝商船) 사이큐마루(西京丸) 등 12척으로 단종진(單縱陣) 형태를 이루어 이튿날인 17일에 해양도(海洋島) 부근 【서쪽 조선만(朝鮮灣)의 한 섬】 을 정찰하고, 다시 대고산(大孤山) 【요동반도의 동남쪽 해안】 앞바다로 향하였다. 오전 11시에 저 멀리 동북쪽 해상에서 여러 줄기의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알았다. 청나라 북양해군(北洋海軍) 제독(提督) 정여창(丁汝昌)이 지휘하는 정원(定遠), 【기함(旗艦)】 진원(鎭遠), 내원(來遠), 정원(靖遠), 경원(經遠), 치원(致遠), 양위(揚威), 초용(超勇), 제원(濟遠), 평원(平遠), 광병(廣丙), 광갑(廣甲) 등 12척 외에 수뢰정(水雷艇) 4척이 대동구(大東溝) 【압록강 하류의 우측 연안】 에서 육군 상륙의 엄호를 마치고 귀항하는 중이었다. 이토 중장은 기함(旗艦)인 마츠시마에 탑승하여 전 함대에 명령을 내려, 작은 함선인 아카기, 사이큐마루 등 2척은 열외에 빠지도록 하였다. 적 함대는 정원과 진원 두 강철함(鋼鐵艦)을 중심으로 하여, 단횡진(單橫陣)을 이루어 우리를 향하였으며, 오후 0시 50분에 약 6천 미터 거리에서 포격을 시작하였다. 우리 함대는 자중하면서 4천 미터까지 접근한 뒤 비로소 응전하였다. 잠시 격전을 벌였는데 양위와 초용 두 척은 맹렬한 불길에 휩싸여 초용은 침몰하였으며 양위는 좌초되었다. 이어서 치원 및 경원도 격침되고 광갑은 좌초하여 파괴되었다. 또한 경원, 내원, 평원도 역시 화재가 나 전장을 떠나자 적의 진형(陣形)은 점차 혼란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정원과 진원 두 척은 여전히 남아서 싸웠는데 일몰에 이르자 우리는 야전(夜戰)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전투를 중지하였으며, 적도 역시 패잔의 함선들을 수습하여 여순(旅順)으로 갔다. 이 해전에서 아카기, 히에이, 사이큐마루 등 세 척은 위험한 상태에 빠져 가장 고전(苦戰)하였으며, 마츠시마도 역시 큰 화재가 나 큰 손해를 입었지만 다행히 한 척도 잃지 않았다. 이후 황해(黃海)의 제해권(制海權)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었다.

우리의 제1군(軍)은 10월 25일에 압록강을 건넜고, 더 나아가 적의 영토를 침입하여 구연성(九連城), 봉황성(鳳凰城), 수암(岫巖), 석목성(析木城) 등을 공격하였다. 12월 18일에는 부와새(缶瓦塞)를 지키던 적의 용맹한 장수인 송경(宋慶)의 대군을 격파하였다. 이에 앞서 육군대장 오야마 이와오(大山巖)는 제2군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10월 24일에 화원구(花園口)에 상륙하여 금주성(金州城), 대련만(大連灣) 【황해 해전 당시 우리[일본] 해군은 근거지를 대동강 하류인 황해도 어은동(漁隱洞)으로 옮겼는데, 이때 이후로 대련만을 근거지로 바꾸었다.】 을 침략하였으며, 11월 21일에는 발해만(渤海灣) 어귀의 요충지인 여순구(旅順口)를 함락시켰다. 산동성(山東省) 영성만(榮城灣)에 상륙한 제2군의 별동대는 2월 2일에 위해위(威海衛) 뒷면의 포대를 모두 점령하였으므로, 해군 제독 정여창은 12일에 북양함대의 잔여 부분을 이끌고 우리 군에 항복하였다. 야마가타(山縣) 대장을 대신한 제1군사령장관인 노즈(野津) 대장은 진격하여 우장(牛莊)과 영구(營口)를 점령하였고, 3월 9일에는 적의 본거지인 전장대(田庄臺)를 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러는 사이에 혼성지대장(混成支隊長)인 육군 대좌 히시지 마요시데루(比志島義輝)는 우리 함대의 엄호 하에 갑자기 팽호도(澎湖島)에 나타나, 3월 25일에 섬 전체를 평정함으로써 대만(臺灣) 본도(本島)를 공략할 근거지를 만들었다. 【구련성(九連城)에서부터 팽호도 점령에 이르기까지의 상세한 기사(記事)는 국정교과서 『교사용 일본 역사』를 참조할 것.】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