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13. 통감부(統監府)의 설치
  • 비고(備考)
  • 메이지 37〜38년의 전쟁
  • 여순구항의 폐색(閉塞)과 봉쇄의 선언

여순구항의 폐색(閉塞)과 봉쇄의 선언

우리 해군은 적 함대가 수리에 여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선(汽船)을 폭침(爆枕)시켜 항구를 폐쇄하여, 그 출동을 차단하고 육군의 대대적인 수송을 안전하게 하려고 하였다. 선발된 결사대(決死隊)는 여러 척의 폐색선(閉塞船)에 나누어 타고, 2월 24일 및 3월 27일의 두 차례에 걸쳐, 어둠을 틈타 항구로 돌진하였다. 유명한 해군 중좌 히로세 타케오(廣瀨武夫) 등이 전사한 것은 제2차 때이다. 그렇지만 완전히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으므로, 우리 연합함대는 밤낮으로 항구 바깥을 순회하며 경계하거나, 혹은 항구에 기계수뢰(機械水雷)를 부설하여 적 함선의 탈출에 대비하였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는 태평양함대가 쇠약해진 것을 개탄하고, 명장 마카로프 제독을 스타르크 중장을 대신하여 전 함대를 지휘하도록 하였다. 4월 13일에 제독은 기함(旗艦)인 페트로파블로스크호에 탑승하여, 우리 제3함대에게 싸움을 걸어왔지만, 우세한 제1함대가 지원해 오자 두려워하여 항구 안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기계수뢰에 부딪혀 침몰하여 막료(幕僚)들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5월 2일 밤에 우리 해군은 12척의 기선들로 제3차 폐색을 단행하여, 대략 그 목적을 달성하였으며, 5월 26일에는 요동 반도 남부의 봉쇄를 선언하고, 국제법에 나타나 있는 일체의 수단을 동원하여 여순구(旅順口)와 국외중립국(局外中立國)들의 교통과 통신의 연락을 차단하였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