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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편 근세 (이씨 조선)
  • 근세의 전기(국기 3725-3900년, 태조-명종 말)
  • 제1장 초기의 정치와 문화
  • 4. 세조와 성종의 치세

4. 세조와 성종의 치세

세종 다음에는 아들 문종이 서고 문종의 뒤에는 그 아들 단종이 섰으나 나이가 어리고 여러 비범한 숙부에 둘러쌓여 있었다. 그 중 수양대군이 마음속에 큰 뜻을 품고 왕의 자리를 뺏으니 이가 세조이다. 【사육신】 성삼문 등 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 6신은 이에 의분을 참지 못하여 비밀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죽음을 당하였다. 이들을 세상에서는 사육신이라 하여 그 충의를 우러러 보지 않은 이가 없었다.

【세조의 치적】 세조는 이와 같이 비록 의롭지 못한 일을 하였으나 재위 13년간에 문무의 다스림이 볼 만한 것이 많았다. 밖으로는 여러 번 북쪽의 야인을 물리치고, 안으로는 함경도 사람 이시애의 반란을 평정하였다. 또한 부왕과 같이 불교를 숭신하여 성안에 대원각사(지금의 탑골공원 안)를 세우고 13층의 탑을 쌓았다. 이 탑은 그 만든 솜씨가 조선 미술의 정화를 보여주었다. 그밖에 간경도감을 두고 불교 서적을 번역하여 간행하였다. 국초 이래의 모든 법령과 조례에 의하여 경국대전이란 큰 법전을 편찬한 것도 그의 빛난 치적의 하나였다. 이 법전은 다음 임금들이 이것을 더욱 완성시켜서 조선 5백년 정치의 큰 표준이 되었다.

【성종의 치적】 제9대 성종은 세종과 세조 이래의 다스림을 이어 밖으로는 두만강 방면의 오랑캐 소굴을 소탕하고 압록강 방면의 야인을 쫓았다. 안으로는 특히 유자 문인을 우대하고 이들에게 유용한 서적 즉 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악학궤범·동문선 등을 편찬하게 하고 활자를 개조하여 많은 책을 인쇄하게 하였다. 조선 초기의 제도와 문물은 이때에 이르러 거의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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