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미군정기 및 교수요목기
  • 국사교본
  • 제3편 근세 (이씨 조선)
  • 근세의 후기(국기 4058-4243년, 영조 원년-순종 말)
  • 제5장 대원군 집정과 쇄국
  • 1. 대원군의 집정

1. 대원군의 집정

【고종의 즉위】 철종이 돌아가고 아들이 없자 왕대비 조씨의 전교로 영조의 현손인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을 익종(헌종의 아버지를 추존한 이름이다.)의 후계자로 맞아 대통을 잇게 하니 이 분이 고종이다. 그 친아버지 흥선군을 높여 대원군이라 하고 고종은 이때 나이 겨우 열두 살이라 조대비 뒤에 앉고 모든 정사를 대원군이 결정하게 되었다.

대원군은 과단 있는 인물로 그때의 나쁜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우선 외척으로 세도를 부리던 김씨를 누르고 당쟁의 고질을 뽑으려 하였다. 【4색(四色)의 등용】 그간 오래 꺾여있던 남인과 북인을 써서 4색 즉 남인·북인·노론·소론을 평등하게 하였으며 지방과 계급의 차별을 없애고 인재를 널리 골라 썼다.

【서원 철폐】 그리고 전부터 여러 가지 폐단을 일으킨 전국의 수많은 서원을 헐어버리게 하고 또 평민만이 물던 대역세를 양반에게도 부담시켰으며 나쁜 관리를 엄벌하고 나쁜 관습과 의복을 고쳤으니, 실로 그가 아니면 이러한 과감한 개혁을 하기 어려웠다.

【경복궁 중건】고종 2년(국기 4198년, 서기 1865년)에 경복궁을 중건하여 새 정부의 위엄을 세우려고 백성에게 원납전이란 미명하에 돈을 바치게 하였고 당백전이라는 한 푼 돈을 백문으로 쓰게 하는 특별한 돈을 만들어 화폐의 신용을 떨어뜨렸으며 부역을 억지로 시키니 차츰 백성의 원망하는 소리가 들리게 되었다.

【민비(閔妃)】 4년에 왕비를 뽑을 때 외척의 세도 부림을 막기 위하여 고단한 집에서 맞아들이기로 하고 대원군의 처족인 민씨의 따님을 가려 왕비로 삼았다. 그 뜻은 비록 좋았으나 나중에 대원군 자신이 밀려나고 민비의 친가에 양자로 들어온 민승호를 비롯하여 여러 민씨가 세도를 잡게 되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