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미군정기 및 교수요목기
  • 우리나라의 생활
  • 다섯째 가름 신라·발해의 성쇠와 그 사회생활은 어떠하였는가?
  • 셋째 조각 신라 발해의 사회생활은 어떠하였는가?
  • ⑤ 신라의 대외 무역과 해상 활동은 어떻게 활발하였는가?

⑤ 신라의 대외 무역과 해상 활동은 어떻게 활발하였는가?

신라의 대외 무역은 당나라와 가장 많이 행하였으며, 조공과 상사(賞賜)라는 명목 아래 두 나라 사신이 왕래하면서 물품을 교환하였다. 수출품의 중요한 것은 금·은·우황·인삼·저포·다리[髢子]·해표피 등이요, 수입품은 주단·서적·약재와 기타 공예품이었다. 교통로는 주로 남양만과 산동 반도 사이의 항로를 통행하였으며, 당나라 사신이 오는 것보다 신라 사신이 가는 것이 더 많았다. 그리고 유학생·유학승과 개인·상인이 또한 많이 당나라에 들어간 까닭에 신라인의 당나라 영토 진출이 비상히 발전하여 산동 반도 연안 각지에 신라방·신라원이라 하는 신라인의 거류지와 사원이 많이 생겼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등주에 있던 적산원으로서, 일본 승려가 당나라 서울에 갈 때도 또한 이곳의 안내를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이 신라 상선이 황해에 많이 뜨게 되자, 당나라 해적이 신라 선박을 습격하여 물화와 인물을 약탈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이에 분개하여 일어나 해적을 소탕하고 일종 해상왕국을 건설한 영웅이 있으니, 그는 곧 유명한 장보고[본명은 궁복]이다. 장보고는 일찍이 당나라 서주에 들어가 해적이 신라 사람을 노예로 매매하는 것을 보고 크게 분개하여 돌아와 흥덕왕에게 고하여 군사 만 명을 얻어서 지금 완도에 청해진을 베풀고(흥덕왕 3년, 서기 828년) 대사가 되어 해적을 소탕하고 산동 반도와 양자강 입구와 일본 각지로 돌아다니면서 큰 무역을 하여 그 재부와 병력이 왕실을 능가하게 되었다. 신라의 해상 활동은 장보고에 이르러 가장 성하였으며, 이때 동아의 제해권과 무역권을 잡고 있었다.

 [익힘]

1. 신라 사람의 당토 진출은 어떠하였는가?

2. 장보고는 어떻게 활동하였는가?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