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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① 몽고는 무슨 까닭으로 침입하였으며 그에 대한 항쟁은 어떠하였는가?

① 몽고는 무슨 까닭으로 침입하였으며 그에 대한 항쟁은 어떠하였는가?

무신 최충헌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몽고 지방에 철목진[몽고 태조 성길사한]이 나타나 몽고족을 통일하고 그 상국인 금나라를 침략하고 새로 일어난 거란[대요수국]을 쫓아서 고려로 들어와 고려 장군 조충, 김취려 등과 연합하여 거란을 강동성[평안남도]에서 격파하였다. 이것이 고종 6년(단기 3552년, 1219년)의 일이다.

이후 두 나라 사이에는 한참 동안 평화 사절이 왕래하였으나, 고종 12년에 몽고의 사신이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금나라 사람에게 암살되었다. 몽고는 이것을 고려인의 소행이라 하고 오랫동안 힐난하다가, 18년에 몽고 장군 살례탑이 대병을 거느리고 침입하였다. 고려는 한편으로 강화하고 한편으로 대항하기 위하여 이듬해 강화도[강도]로 천도하였다. 이후 몽고는 30년 간 여러 번 고려에 침입하여 혹은 오랫동안 주둔하면서 남으로 동경[경주]과 전주까지 침략하였으나, 강도는 어찌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몽고병이 대륙에서 생장하여 해전에 서투른 까닭이다. 그리고 고려가 이와 같이 오랫동안 대항한 것은 몽고인의 약점을 잡아서 강도로 들어간 까닭도 있지만 이것보다는 최우, 최항, 최의 등 최씨 3대가 정권을 잡고 국론을 통일하고 국민이 일치단결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고종 45년에 유경, 김인준 등이 최의를 죽이고 정권을 왕에게 돌리게 되자 몽고에 대한 방침도 변하였다. 이듬해 드디어 몽고와 강화하고 원종 11년(단기 3603년, 1270년)에 개경으로 환도하였다. 그런데 이때 삼별초[좌별초·우별초·신의별초]의 군인들은 몽고에 항복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켜 탐라[제주도]로 들어가 3년 간 대항하다가 관군과 몽고군에게 패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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