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보통교과 동국역사(1권)
  • 동국역사 권1(삼국기(三國記)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 무진(戊辰) [668년]

무진(戊辰) [668년]

【신라 문무왕 7년 ○ 고구려 보장왕 26년 이 해에 고구려가 망했다○ 당 고종 총장(總章) 원년 ○ 일황 천지(天智) 원년 ○ 서력 기원 668년】

가을 9월에 신라(新羅) 왕이 당(唐)나라 병사와 연합하여 고구려(高句麗) 평양성(平壤城)을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이에 앞서 당나라 이적(李勣)을 요동 행군 대총관(遼東行軍大摠管)으로 삼고 여러 장수를 통솔하여 고구려의 대곡(大谷)과 한성(漢城) 등 2개 군을 빼앗고, 신라에 사신을 보내 군사를 보낼 것을 청하였다. 신라 왕이 그의 아우 김인문(金仁問)과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金欽純)에게 군사를 데리고 도와서 싸우도록 하였다. 그때에 김유신은 늙고 병들어서 집에 있었는데, 김흠순 등이 김유신에게 계책을 묻고 즉시 행하여 이적 등과 함께 평양성을 포위하였다. 한 달 남짓 지나서 고구려 왕이 천남생(泉男生)【천개소문(泉蓋蘇文)의 아들】을 보내서 수령(首領) 98명을 거느리고 백기(白旗)를 세우고 와 항복하였다. 이적이 고구려 왕 장(臧)과 그의 두 아들 복남(福男)과 덕남(德男), 대신 남건(男建) 등 20여만 명을 포로로 삼아서 돌아가니 고구려가 망하였다. 당나라가 안동 도호부(安東都護府)를 평양에 설치하고 설인귀(薛仁貴)를 도호(都護)에 임명하여 다스리게[鎭撫] 하였다. 고구려가 주몽(朱蒙)으로부터 보장왕(寶藏王)까지 28대에 왕업을 이어 온 해가 705년이었다. 그 이후에 당나라 황제가 보장왕을 요동(遼東)으로 돌려보냈는데, 왕이 말갈(靺鞨)과 몰래 계책을 세워 옛 나라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당나라 황제가 왕을 소환하였으나 이르지 못하고 중도에서 죽었다. 당나라 황제가 힐리(頡利)의 묘 옆에 안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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