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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乙巳) [헌강왕 10년]

【당 희종 광계(光啓) 원년 ○ 일황 광효(光孝) 원년 ○ 서력 기원 885년】이었다.

봄 3월에 최치원(崔致遠)이 당(唐)나라에서 돌아왔다. 최치원의 호는 고운(孤雲)으로, 사량부(沙梁部) 사람이다. 12세에 당나라에 들어가 힘써 배워서 글 짓는 솜씨가 뛰어났고,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시어사내공봉(侍御史內供奉)이 되었다. 그때에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키자, 병마도통(兵馬都統) 고병(高騈)의 종사(從事)가 되어 서기(書記)의 일을 담당하였는데, 황소를 토벌하는 격문이 엄정하고 통쾌하여 크게 인심을 감동케 하였다. 그 격문에서 말하길, “오직 천하의 사람 모두가 너를 죽이고자 할 뿐 아니라 또한 땅속의 귀신도 몰래 너를 죽이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황소가 그 격문을 보고 크게 놀라 평상에서 떨어졌다. 이때부터 최치원의 문명(文名)이 천하에 떨쳤는데 이때에 이르러 귀국하니 나이가 28세였다. 왕이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 시랑 지서 감사(侍讀兼翰林學士守兵部侍郞知瑞監事)에 임명하니 최치원이 자기의 재주[蘊奧]를 펼쳐 보려 했으나, 쇠락한 시절을 당하여 시기가 많았으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태산군(太山郡)【지금의 태인(泰仁) 또는 서산(瑞山)이라고도 한다.】 태수로 나아갔다. 이후에 난세를 만나서 다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산천을 방랑하였다. 지금의 경주(慶州) 남산(南山)과 지리산(智異山) 쌍계사(雙溪寺), 가야산(伽倻山) 등이 모두 그가 유람하며 노닐던 곳이다. 문집이 있어 후세에 전하니 바로 『계원필경(桂苑筆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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