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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丁亥) [경애왕 3년]

【후백제 견훤 36년 ○ 고려 태조 10년 ○ 후당 명종(明宗) 천성(天成) 2년 ○ 일황 제호 30년 ○ 서력 기원 927년】이었다.

겨울 10월에 견훤(甄萱)이 경도(京都, 경주)를 공격하여 들어가서 왕을 시해하고 왕의 외종 동생[表弟] 김부(金傅)를 왕위에 세웠다. 고려 왕[麗王]이 직접 견훤을 공격하다가 패하였다. 이에 앞서 견훤이 신라(新羅)의 도성 가까이에 바짝 다가오니 왕이 고려에게 급히 알렸다. 고려 왕이 구원병을 보냈으나 도달하기 전에 견훤이 갑자기 왕도(王都)에 들어가니 그때에 왕은 포석정(鮑石亭)에 나아가 술을 마시며 노래를 하다가 견훤의 병사가 다다른 것을 듣고 크게 놀라서 곧 부인과 함께 성 남쪽 이궁(離宮)으로 달려가 숨었다. 견훤이 왕을 찾아내 죽이고 왕비를 강제로 욕보였으며 자녀와 진귀한 보물을 모두 취하여 돌아갔다. 고려 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의를 표하고 친히 날쌘 기병 5천을 거느리고 견훤을 공산(公山)【지금의 대구(大丘)】에서 맞아 싸웠다. 견훤의 병사들에게 포위를 당해 매우 위급하였는데 대장 신숭겸(申崇謙)의 외모가 고려 왕과 유사하였으므로 왕에게 아뢰기를, “신이 청컨대 적들을 속이겠습니다.”하고 이에 왕을 수풀 속에 숨기고 자신이 왕의 수레를 대신 타고 장군 김낙(金樂)과 함께 힘껏 싸우다가 죽었다. 왕이 이 틈을 타서 탈출하여 돌아가서 사찰을 지어서 두 사람의 충성에 보답하였으며, 신숭겸의 시호는 장절(壯節)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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