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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을미(乙未) [경순왕 8년]

을미(乙未) [경순왕 8년]

【이 해에 신라가 망했다 ○ 후백제 견훤 44년 ○ 고려 태조 18년 ○ 후당 민제 응순 2년 ○ 일황 주작 5년 ○ 서력 기원 935년】이었다.

봄에 견훤(甄萱)의 아들 신검(神劍)이 그 아비를 금산(金山)의 불사(佛寺)【금구(金溝) 금산사(金山寺)】에 유폐하고 그의 아우 금강(金剛)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 견훤이 고려(高麗)로 도망쳐 왔다. 견훤이 금산사에 있은 지 3개월에 지키던 병졸들을 취하도록 마시게 하고, 막내 아들 능예(能乂)와 딸, 총애하던 애첩 등을 이끌고 나주(羅州)에 이르러 고려 왕을 만날 것을 청하였다. 이에 왕이 사신을 보내어 영접하고 남궁(南宮)을 내어 주며 후한 예로써 대하였다. 직위를 신하들 위에 두고 양주(楊州)를 하사하여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

○ 겨울 10월에 왕이 고려에 항복하니 신라(新羅)가 망하였다. 이때에 왕이 영토가 날마다 줄어드는 것을 보고 군신과 함께 고려에 항복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왕자 모(某)가 간언하여 말하기를, “국가의 존망은 천명이 있는 것이니 마땅히 충신과 의사가 힘을 합하여 죽음으로써 지키다가 힘이 다한 후에 그칠 것입니다. 어찌 천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에게 쉽게 넘겨 주겠다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고립되고 위태로움이 이와 같으니, 내가 죄 없는 백성으로 하여금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할 수는 없다.”라고 하고 드디어 고려에 항복할 것을 청하였다. 이에 왕자가 눈물을 흘리며 인사를 하고 개골산(皆骨山)【금강산(金剛山)】에 들어가 삼베옷을 입고 나물을 먹으며 일생을 마쳤다. 왕이 고려에 이르니 고려 왕이 교외 밖에 나와서 맞이하여 위로하고 유화궁(柳花宮)을 하사하였다. 장녀 낙랑 공주(樂浪公主)를 처로 맞이하고 또한 정승(政丞)에 임명하여 직위가 태자의 위에 있게 하고 그 옛 도성으로써 경주(慶州)라 하여 식읍으로 삼았다. 신라가 왕통을 계승한 것이 박씨가 10명의 왕이고, 석씨가 8명의 왕이며, 김씨가 37명의 왕이었으니 통합 55명의 왕이다. 왕업을 이어 온 햇수는 모두 992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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