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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辛未) [현종 22년]

【송 인종 천성 9년 ○ 일황 후일조 15년 ○ 서력 기원 1031년】이었다.

여름 5월에 왕이 위독하여 태자 흠(欽)에게 후사를 부탁하고 돌아가셨다. 왕이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인자했으며, 커서는 배움이 빠르고, 글솜씨가 뛰어났으며, 눈과 귀를 한 번 거쳐 간 것은 절대 잊지 않았다. 태자가 즉위하여 시호를 원문(元文)1)원문에는 문원(文元)으로 되어 있으나, 원문(元文)으로 바로잡는다.이라 하고, 묘호는 현종(顯宗)이라 하였으며, 선릉(宣陵)에 안장하였다.

○ 가을 8월에 강감찬(姜邯贊)이 죽었다. 강감찬은 금천(衿川)【지금의 시흥(始興)】 사람이다. 성품이 청렴하여 산업을 경영하지 않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뛰어난 지략이 많았다. 형체가 왜소하고 의상이 허름해서 외모는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얼굴색을 바르게 하고 조정에 나아가서 큰 일과 큰 계책을 결정할 때에는 우뚝이 나라의 기둥[柱石]이 되었다. 또 벼슬에서 물러나 성의 남쪽에서 지내다가 이때에 이르러 죽으니, 나이는 80세이고, 시호는 인헌(仁憲)이라 하였다.

○ 겨울 10월에 국자감시(國子監試)를 시행하여 시(詩)와 부(賦)로 시험을 보아 인재를 선발하니, 감시법(監試法)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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