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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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丁亥) [예종 2년]

【송 휘종 대관(大觀) 원년 ○ 일황 굴하 21년 ○ 서력 기원 1107년】이었다.

겨울 12월에 윤관(尹瓘) 등이 동여진(東女眞)을 공격하여 크게 물리치고 길주(吉州) 등 4개의 성을 쌓았다. 이때에 변방의 신하가 보고하기를, “여진(女眞)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변방의 성을 침략하였습니다. 그때에 저들 추장이 하나의 호리병에 꿩의 꼬리 깃을 매달고 각 부(部)를 돌아다니며 보여 주면서 전투에 대해 의논하도록 했는데, 그 계책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윤관을 원수(元帥)로 삼고 오연총(吳延寵)을 부원수(副元帥)로 삼아서 군사 17만 명을 거느리고 나아가 공격하도록 하였다. 윤관 등이 성 아래에 도달하니 적들이 성 위에서 대항하여 활을 쏘는데 마치 비 오듯이 하였다. 이로 인해 병사들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병마 녹사(兵馬錄事) 척준경(拓俊京)이 뚫고 나아가 추장 여러 명을 죽였다. 이에 윤관 등이 좌군 병마사(左軍兵馬使) 김덕진(金德珍)과 함께 힘을 합쳐 돌격하여 크게 물리쳤는데 4천 8백여 급의 머리를 베었다. 이로 인해 땅의 경계를 획정하고 영주(英州)【지금의 길주 안에 있다.】, 웅주(雄州)【지금의 길주 안에 있다.】, 복주(福州)【지금의 단천(端川)】, 길주 등에 4개의 성을 쌓았다.

○ 이씨(李氏)를 받아들여 비(妃)에 봉하니(1108), 그 왕비는 급사중(給事中) 이자겸(李資謙)의 딸로 이자연(李子淵)의 증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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