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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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사(癸巳) [예종 8년]

계사(癸巳) [예종 8년]

【송 휘종 정화(政和) 3년 ○ 일황 조우 6년 ○ 서력 기원 1113년】이었다.

봄 2월에 화원(花園) 2곳을 없앴다. 이에 앞서 왕이 장원정(長源亭)과 상춘정(賞春亭) 등에 여러 차례 나아가 연회와 오락을 즐겼다.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이 사치스러움으로 왕에게 아첨하여 화원을 왕궁 남쪽과 서쪽에 나누어 설치하고 누각을 크게 지었다. 민가의 화초를 거두어서 옮겨 심었으나 오히려 부족하여 또 송(宋)나라에 가서 사 왔다. 이로 인해 의견이 분분하자 없애 버렸다.

○ 4월에 여진(女眞)의 오라골(烏羅骨)과 실현(實顯) 등이 와서 9개 성을 돌려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 말과 금을 바쳤다.

○ 여진 완안(完顔) 아골타(阿骨打)가 군사를 일으켜 요(遼)나라에 반기를 들었다(1114). 요나라가 장차 공격하여 토벌하고자 할 때에 우리에게 서신을 보내 그 지역을 방어하여 도망가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 중서령(中書令)에서 물러난 최사추(崔思諏)가 죽었다. 최사추는 최충(崔冲)의 손자이다. 그의 딸이 이자겸(李資謙)에게 시집가서 왕비를 낳았으므로 왕이 예로써 대함이 특별히 후했다. 그러나 최사추는 근검하고 청렴하였으며, 문벌로써 교만하지 않았고, 정치를 하는 데도 큰 틀을 힘써서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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