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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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유(丁酉) [명종 7년]

정유(丁酉) [명종 7년]

【송 효종 순희 4년 ○ 일황 고창 9년 ○ 서력 기원 1177년】이었다.

여름 5월에 서경(西京) 사람이 반란을 일으켜서 부유수(副留守) 박정희(朴挺羲)를 죽였다. 처음에 왕의 군사가 서경을 공격할 때에 성을 넘어서 항복하는 자가 천여  명이었다. 성이 함락되자 성안의 장정이 모두 도망가 숨었는데, 그 후에 항복한 자들이 도망가 숨은 자들을 도적이라고 하며 부녀자를 겁탈하고 재물을 약탈하였다. 이에 도망간 자 가운데 김단(金旦) 등 5백여 명이 난을 일으켜서 박정희와 판관(判官) 박영(朴寧) 등을 죽였다. 조정에서 병사를 보내 토벌하니 서북 사람들이 김단의 목을 베어 보냈다. 얼마 후에 적들이 다시 일어나니 병마사(兵馬使) 이부(李富)가 계책을 써서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 가을 7월에 남쪽의 도적 망이(亡伊) 등이 사로 잡혔다. 이에 앞서 공주(公州) 명학소(鳴鶴所)의 백성 망이 등이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틈타서 무리를 불러 모아 스스로 산행 병마사(山行兵馬使)라 칭하고 공주를 공격해 함락하였다. 그곳을 빼앗아 머문 지가 1년이 넘었는데, 이때에 병마사 정세유(鄭世猷) 등이 망이를 체포하니 이후로 남쪽의 도적들이 점차 평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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