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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癸亥) [신종 6년]

【송 영종 가태(嘉泰) 3년 ○ 일황 토어문 5년 ○ 서력 기원 1203년】이었다.

봄 2월에 도량[道場]을 수문전(修文殿)에 두었으니, 이는 당시 도적들이 자주 봉기하므로 이를 물리치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 겨울 12월에 초토병마사(招討兵馬使) 정언진(丁彦眞)이 남쪽의 도적을 토벌하였다. 이에 앞서 경주(慶州) 별초군(別抄軍)이 영주(永州)【지금의 영천(永川)】 백성과 틈이 벌어져서 운문산【청도군(淸道郡)에 있으니, 즉 바로 앞서 남쪽 도적 효심(孝心)의 근거지이다.】의 도적을 끌어 들여 영주를 공격하였다. 또한 경주 사람 패좌(孛佐) 등이 고려(高麗)의 왕업이 거의 운이 다했으니 다시 신라(新羅)를 부흥해야 한다고 칭하면서 병사를 일으켰다. 최충헌(崔忠獻)이 대장군(大將軍) 김척후(金陟侯) 등을 보내서 공격하니, 도적 무리가 더욱 번성하여 서로 대치한 지 해를 넘기자 군사들은 지치고 아무런 공이 없었다. 이에 김척후를 파직하고 정언진을 보내니 정언진이 여러 가지 방책을 써서 도적의 우두머리를 잇달아 체포하고 1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이때 여러 도적이 평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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