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보통교과 동국역사(2권)
  • 동국역사 권4(고려기(高麗紀))
  • 희종(熙宗)
  • 신미(辛未) [희종 7년]

신미(辛未) [희종 7년]

【송 영종 가정 4년 ○ 일황 순덕(順德) 원년 ○ 서력 기원 1211년】이었다.

9월에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1)원문에는 대(待)로 되어 있으나, 시(侍)로 바로잡는다.에서 물러난 최당(崔讜)이 죽었다. 최당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글을 잘 지었으며 가는 곳마다 명성과 업적이 있었다. 네 명의 왕을 연이어 모셔서 한 시대에 이름이 높았으며, 어진 사람을 천거하고 능력 있는 자를 써서 종묘사직을 편안히 보존하였다. 나이가 많지 않았으나 물러나 쉬었다.

○ 금(金)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였으나, 이르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에 앞서 조정에서 사신 김양기(金良器) 등을 금나라에 보냈을 때에 금나라가 몽고(蒙古)와 전쟁을 하였다. 김양기가 통주(通州)【청(淸)나라 북경(北京) 근처】에서 몽고군에게 죽음을 당하였으므로 금나라 사람이 그의 유골을 수습하여 돌려보냈다. 이때 다시 사신을 보냈으나 길이 막혀 이르지 못하였다.

○ 겨울 12월에 왕이 수창궁(壽昌宮)에 있으면서 내시 낭중(內侍郞中) 왕준명(王濬明)과 참정(參政) 우승경(于承慶), 추밀사(樞密使) 사홍적(史弘績), 장군 왕익(王翊) 등과 함께 최충헌(崔忠獻)을 죽이고자 모의하였다. 이때 승려 10여 명을 궁안에 매복시켜 기회를 엿보아 최충헌을 쳐서 죽이려고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최충헌이 곧 왕준명 등을 유배 보내고 드디어 왕을 폐위하여 강화(江華)로 옮겼다가 다시 자연도(紫鷰島)【지금의 인천(仁川)에 속해 있다.】로 옮겨 살게 하였다. 태자 지(祉)는 인주(仁州)【인천】로 내쫓고 명종(明宗)의 아들 한남공(漢南公) 정(貞)을 옹립하니, 왕이 즉위하여 이름을 오(祦)로 고쳤다. 최충헌에게 공신 호를 내리고 그의 집2)원문에는 동생(弟)으로 되어 있으나, 집(第)으로 바로잡는다. 흥녕부(興寧府)3)원문에는 숭녕부(崇寧府)로 되어 있으나, 흥녕부(興寧府)로 바로잡는다.를 진강부(晉康府)로 개명하였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