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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乙亥) [고종 2년]

【송 영종 가정 8년 ○ 일황 순덕 5년 ○ 서력 기원 1215년】이었다.

가을 8월에 최충헌(崔忠獻)이 장군 이광유(李光裕)로 하여금 전왕을 교동(喬桐)으로 옮기도록 했을 때에 이광유가 돌아와서 대접할 음식이 부족함을 보고하였다. 최충헌이 성난 목소리로 말하기를, “내가 인자하고 너그럽지 않았으면 왕의 부자가 어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겠는가? 왕준명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머리털이 곤두선다.”라고 하였다. 이에 앞서 왕이 최충헌의 처 임씨(任氏)를 수성택주(綏成宅主)에 봉하고, 또 왕씨(王氏)는 정화택주(靜和宅主)로 삼았다. 임씨는 장군 손강윤(孫江胤)의 처였으나, 최충헌이 손강윤을 죽이고 빼앗았으며, 왕씨는 강종(康宗)의 딸이었다. 최충헌이 별채로 옮겨 들어갈 적에 칼과 창을 찬 호위병이 몇 리에 걸쳐서 가득 찼고 따르는 조정 관료가 매우 많았다. 추밀사(樞密使) 금의(琴儀)는 학문에 힘쓰고 문장을 잘 지었으나 최충헌에게 아첨하여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최충헌을 따르며 그 뒤를 쫓아다녔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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