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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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庚辰) [충혜왕 후 원년]

【원 순제 지원 6년 ○ 일황 후촌상 2년 ○ 서력 기원 1340년】이었다.

순천군(順天君) 채홍철(蔡洪哲)이 죽었다. 채홍철의 사람됨이 탐욕스럽고 야비했으나 재주가 정교하여 문장과 기예에 모두 그 재능을 발휘하였다. 활인당(活人堂)을 세워서 약제를 나누어 주었으며, 권부(權溥) 이하 나라의 원로 여덟 명을 초청하여 기영회(耆英會)를 만들고, 『자하동(紫霞洞)』이란 가곡(歌曲)을 지어 악부(樂府)에 전하였다.

○ 성산군(星山君) 이조년(李兆年)이 벼슬에서 물러났다. 이때에 왕이 음란하고 방탕함이 날로 심해졌는데, 송강(松崗)에 걸어 나가 참새를 쏘자 이조년이 무릎 꿇으며 간언하였다. 그러나 왕이 듣지 않으므로 이조년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왕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니 왕을 섬기는 도리가 아니다.”라고 하고 다음 날 말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 성균 제주(成均祭酒) 우탁(禹倬)이 죽었다. 우탁은 단산(丹山)【지금의 단양(丹陽)】 사람으로 유교 경전과 역사에 능통했으며, 역학(易學)에도 심오하였다. 충선왕(忠宣王)에게 글을 올려 힘을 다해 간청한 후에 늙었다는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나 예안현(禮安縣)에 머물렀다. 충숙왕(忠肅王)이 그의 충의를 가상히 여겨서 거듭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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