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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甲辰) [공민왕 13년]

【원 순제 지정 24년 ○ 일황 후촌상 26년 ○ 서력 기원 1364년】이었다.

봄 정월에 우리 태조(太祖)께서 최유(崔濡)를 격파하셨다. 이에 앞서 원(元)나라가 덕흥군(德興君) 혜(譓)를 우리나라에 보내고자 하니, 왕이 경복흥(慶復興)을 서북면 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삼아 안우경(安遇慶) 등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가서 방어하게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최유가 원나라 병사 1만 명을 이끌고 압록강(鴨綠江)을 건너오자 안우경이 공격하여 물러났으나, 이윽고 적병이 몰래 이르니 우리 군이 크게 패하였다. 적이 선주(宣州)【지금의 선천(宣川)】에 들어가 점거하니, 민심이 더욱 흉흉해졌다. 왕이 최영(崔瑩)을 도순위사(都巡慰使)에 임명하여 안주(安州)로 급히 달려가도록 하고 또 태조에게 명하여 정예 기병 1천을 거느리고 가서 지원하게 하니 군세가 점점 진작되었다. 이때 적이 수주(隨州)【지금의 정주(定州)】와 달천(㺚川)에 가서 주둔하였다. 그 다음 날 태조께서 수하의 노장(老將) 두 사람을 좌우익으로 삼고 힘을 다해 공격하여 크게 물리치니, 최유와 혜가 겨우 화를 면하여 강을 건너 도망갔다. 처음에 덕흥군 혜가 정통성 없이 왕위에 올랐을 때 왕이 찬성사(贊成事) 이공수(李公遂)를 원나라에 보내 사정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공수가 원나라에 이르니 혜가 거짓 관직[僞官]을 제수하고자 하였으나, 이공수가 이를 받지 않았다. 기황후[奇后]가 강제로 명을 내렸으나 이공수가 분격해 하며 말하기를, “신이 비록 목에 흐르는 피를 덕흥(德興)의 수레에 뿌리지는 못하지만, 어찌 이를 차마 따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이공수가 글을 써서 대나무 지팡이 속에 넣고 몰래 사람을 보내 최유가 병사를 일으킨 사실을 알리니, 조정이 비로소 이공수가 굴복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 여름 5월에 왜구[日賊] 3천여 명이 진해(鎭海)로 쳐들어오자 경상도 순문사(慶尙道巡問使) 김속명(金續命)이 나아가서 모두 죽였다.

○ 겨울 10월이었다. 이에 앞서 최유가 패하여 돌아가서는 다시 크게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였다. 원나라의 감찰어사(監察御史) 유연(紐憐) 등이 최유가 나라를 팔고 불화를 만든 죄를 설명하였다. 원나라 황제가 곧바로 최유에게 형틀을 씌워 보내니 왕이 죽였다.

○ 이공수가 원나라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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