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보통교과 동국역사(2권)
  • 동국역사 권5(고려기(高麗紀))
  • 공민왕(恭愍王)
  • 갑인(甲寅) [공민왕 23년]

갑인(甲寅) [공민왕 23년]

【명 태조 홍무 7년 ○ 일황 후귀산(後龜山) 2년 ○ 서력 기원 1374년】이었다.

가을 7월에 최영(崔瑩)을 양광도(楊廣道)【지금의 경기도와 충청도 두 도】 등의 도통사(都統使)로 삼아 여러 군대를 이끌고 제주(濟州)를 정벌하게 하였다. 이에 앞서 명(明)나라가 탐라(耽羅)의 말 2천 필을 징발하고자 하니 왕이 평리(評理) 한방언(韓方彦)에게 명하여 가서 이를 거두려 하였다. 제주에 살고 있던 원(元)나라 사람 석질리(石迭里) 등이 이를 듣지 않고 말하기를, “내가 어찌 원나라 세조가 풀어 기른 말을 명나라에 보내겠는가?” 하면서 다만 3백 필을 바쳤다. 왕이 명나라의 뜻을 거스르기가 어려워 최영 등으로 하여금 군사 2만 명을 이끌고 가서 공격하게 하였다. 석질리 등이 3천여 기병으로 명월포(明月浦)【제주에 있다.】에서 맞서 싸웠다. 최영이 진격하여 크게 물리치고 석질리의 목을 베었으며, 남은 무리를 모두 죽이니 이에 제주가 평정되었다.

○ 9월에 명나라의 징마사(徵馬使)가 돌아가므로 왕이 밀직부사(密直副使) 김의(金義)를 보내 호송하게 하였다. 그때 명나라 사신이 술주정을 하며 매번 김의를 죽이고자 하므로, 결국 김의가 명나라 사신을 죽이고 말 3백 필을 빼앗아 북원(北元)으로 도망갔다. 김의는 본래 원나라 사람이었다.

○ 왕이 강녕부원군(江寧府院君)1)원문에는 강릉부원군(江陵府院君)으로 되어 있으나, 강녕부원군(江寧府院君)으로 바로잡는다. 우(禑)의 어미가 천하다 하여 죽은 궁인(宮人) 한(韓)씨가 낳았다고 칭하고 한씨의 3대에게 벼슬을 추증하였다.

○ 환관 최만생(崔萬生)과 총애를 받던 신하 홍륜(洪倫) 등이 왕을 시해하였다. 처음에 왕이 홍륜 등으로 하여금 궁중의 여인들과 정을 통하여 아들을 낳기를 바랐다. 이때 익비(益妃) 왕씨(王氏)가 임신을 하자 최만생이 이를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누구와 잠을 잤는가?”라고 하니, 최만생이 대답하기를, “익비께서 홍륜이라고 말하였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왕이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홍륜을 죽여 그 입을 막을 것이며, 너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최만생이 크게 두려워하여 그날 밤 홍륜 등과 함께 침전에 들어가 왕을 쳐서 시해하였다. 태후가 왕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경복흥(慶復興)과 이인임(李仁任) 등을 불러 최만생 등을 죽이고, 이인임의 의견에 따라서 강녕부원군2)원문에는 강릉부원군으로 되어 있으나, 강녕부원군으로 바로잡는다. 우를 왕으로 세웠다. 왕의 성품이 본래 엄중하고 거동과 차림새가 예절에 맞았는데, 만년에 마음의 병을 얻어서 시기하고 난폭하였으며, 허황된 말에 현혹됨이 매우 심하였다가 이런 화를 당하게 되었다. 시호는 공민(恭愍)이라 하고 현릉(玄陵)에 장사 지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