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태조 홍무 9년 ○ 일황 후귀산 4년 ○ 서력 기원 1376년】이었다.
봄 3월에 폐왕 우(禑)의 어머니 반야(般若)【음은 야(耶)】를 임진강(臨津江)에 던져 죽였다. 반야가 태후궁에 들어가 울며 말하기를, “내가 실제로 주상(主上)을 낳았는데 어찌 한(韓)씨를 어머니라 합니까?”라고 하였다. 이때 이인임(李仁任)이 왕을 받들어 세운 후 국정을 제멋대로 하였으므로, 곧 반야를 체포하여 옥에 가두었다가 마침내 임진강에 던져 죽였다. 반야가 국문을 받을 때에 새로 세운 중문(中門)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하늘이 만약 나의 원통함을 안다면 저 문이 반드시 저절로 무너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문이 저절로 무너지니, 세상 사람들이 크게 괴이하게 여겼다.
○ 가을 7월에 일본(日本)이 공주(公州) 등의 성을 함락하니, 양광도 원수(楊廣道元帥) 박인규(朴仁桂)가 패하여 죽었다. 최영(崔瑩)이 출전을 자청하여 왜구[日兵]와 함께 홍산(鴻山)에서 싸울 때에 몸소 앞장서서 군사를 이끌다가 적의 화살에 입술을 맞아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얼굴색이 평소와 같이 태연하였고, 드디어 힘껏 싸워서 크게 물리치니 이로 인해 명성을 크게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