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보통교과 동국역사(2권)
  • 동국역사 권5(고려기(高麗紀))
  • 전(前) 폐왕(廢王) 우(禑)
  • 정사(丁巳) [전 폐왕 우 3년]

정사(丁巳) [전 폐왕 우 3년]

【명 태조 홍무 10년 ○ 일황 후귀산 5년 ○ 서력 기원 1377년】이었다.

봄 3월에 일본(日本)이 착량(窄梁)에 침입하여 전선을 불태우고 또 강화(江華)를 약탈하니 도성이 크게 놀랐다. 우(禑)가 두려워하여 철원(鐵原)으로 도읍을 옮기려고 하자, 최영(崔瑩)이 간언하여 멈추게 하였다. 이윽고 적이 또한 서강(西江)【송도(松都)의 서강】까지 진격하여 압박하니, 최영이 변안렬(邊安烈)과 함께 격퇴하였다.

○ 여름 5월이었다. 그때에 왜구[日寇]가 경상도에 그득하니 원수(元帥) 우인열(禹仁烈)이 군사를 지원해 주기를 급히 청하였다. 우(禑)가 우리 태조(太祖)와 김득제(金得齊) 등을 조전원수(助戰元帥)에 임명하고 가서 지원하게 하였다. 태조께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바로 가시다가 지리산(智異山)에서 적을 크게 물리치셨다.

○ 가을 8월에 왜구가 서해도(西海道)【지금의 황해도】를 약탈하였는데, 원수 나세순(羅世巡) 등이 패하였다. 이에 태조께서 곧 진격하여 해주(海州)에서 적을 크게 물리치시니, 나머지 적들이 험한 지역을 점거하고 섶나무를 쌓아 방비하였다. 태조께서 호상(胡床, 중국식 의자)에 걸터앉아 계시면서 음악을 울리고 술을 마시며 병사들로 하여금 섶나무를 불태우게 하니,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뒤덮었다. 적이 기세가 궁해지자 죽음을 무릅쓰고 포위를 뚫고 나올 때 화살이 태조 앞에 놓인 술병에 명중하였다. 태조께서 편안히 앉아 일어나지 않으시고 여러 군사에게 호령하여 적을 완전히 섬멸하였다.

○ 내성(內城)을 쌓았다. 최영이 건의하였는데, 도성의 외성이 넓고 커서 수비하기가 어려우므로, 내성을 쌓아 뜻하지 않은 일에 대비하고자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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