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弓裔)의 장수가 되어 여러 주(州)를 정벌하고 위엄과 덕망이 날로 성하니 인심이 자연히 복종하였고 궁예는 무도하기가 날로 심하였다. 이에 신라(新羅) 경명왕(景明王) 원년(917), 지금으로부터 989년 전【광무(光武) 10년(1906)으로부터 계산하면 대략 이와 같다.】에 왕건의 기장(騎將)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1)원문에는 배현경(裴玄慶)으로 되어 있으나, 배현경(裵玄慶)으로 바로잡는다.,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등이 왕건의 사저에 이르러 추대하고자 하였으나 왕건이 따르지 않았다. 부인 유씨(柳氏)가 급히 갑옷을 왕건에게 입히고 여러 장수가 옹립하여 나아가서 왕위에 올랐다. 국호를 고려라 하고 연호를 세워 천수라 하였고, 여러 신하의 공을 논상(論賞)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