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에 명(明)나라가 요동에 철령위(鐵嶺衛)를 세웠다. 이에 최영(崔瑩)이 우왕(禑王)에게 권하여 요동을 공격하게 하니, 우리 태조(太祖)께서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왕이 평양(平壤)으로 행차하여 최영을 팔도 도통사(八道都統使)에 제수하였다. 조민수(曺敏修)1)원문에는 조민수(曹敏修)로 되어 있으나, 조민수(曺敏修)로 바로잡는다.는 좌군(左軍)을 인솔하고 우리 태조께서는 우군(右軍)을 인솔하시니 좌⋅우군이 3만 8천여 명이었다. 평양에서 출발하여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위화도(威化島)【압록강 안】에 이르니 큰 비가 쏟아져 죽는 병졸이 많았다. 좌⋅우군의 장수가 글을 올려 군사를 돌릴 것을 청하였으나 우왕이 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