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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학전(贍學錢)

충렬왕(忠烈王)은 당시 유사(儒士)가 오직 과거 시험을 위한 문장만을 익히고 경전과 역사를 이해하는 자가 적다 하여 최옹(崔雍) 등 7명을 경사교수(經史敎授)에 제수하였다. 또 국학에 대성전(大成殿)을 새로 세웠는데, 이때 안유(安裕)가 건의하여 국학에 섬학전【지금의 학교 기부금과 같다.】을 두었다. 또 서적을 지나(支那) 강남에서 구해 오니 여러 일이 자못 정비되고 수업을 받는 학생이 수백 명이 되었다.

충선왕(忠宣王)은 박사(博士) 유연(柳衍)을 강남에 보내 경적(經籍) 1만 8천 권을 구해 오게 하였다. 원(元)나라가 또 송(宋)나라 비각(秘閣)의 소장 서적 4천 3백 7십 1책을 보내 왔다. 공민왕(恭愍王) 때에는 국학과 12도(徒) 동서 학당을 정비하고, 기타 중앙과 지방의 학교를 수리하고 이색(李穡)이 대사성(大司成)을 겸하니 학도가 점점 늘어났다.

공양왕(恭讓王)도 또한 유학교수관(儒學敎授官)을 개경(開京)의 5부와 각 도(道)에 설치하여 학업을 장려하였다. 대체로 12도는 본래 사학이었으나 이때에는 국학과 동서 학당이 병립하였다. 무릇 과거에 응시하는 자는 먼저 12도 중에 속하여 배웠으니 정부에서 이를 정중하게 대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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