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법에 정통한 자는 역대에 적잖았다. 예종(睿宗) 때에는 홍관(洪灌)이 신라(新羅) 김생(金生)의 서체를 모방하였다. 고종(高宗) 때에 곽예(郭預)는 서법이 가늘면서도 힘이 있어 일가를 이루었으니, 당대인이 한결같이 따라 하였다. 그 외 요극일(姚克一), 문공유(文公裕), 문극렴(文克謙)과 승려 탄연(坦然), 영업(靈業)과 이지명(李知命), 기홍수(奇洪壽), 한수(韓修), 유공권(柳公權)은 모두 일대의 이름난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공민왕(恭愍王)은 서법과 그림이 모두 신묘한 경지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