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길도(咸吉道)는 고려(高麗) 때에 여진(女眞)을 정벌하여 북계에 9성을 쌓았으나 너무 멀어 지키기가 곤란했기 때문에 여진에게 돌려주었으나, 태조(太祖) 때에는 두만강(豆滿江)까지 다 차지하였다. 태종(太宗)께서는 부령(富寧) 이북을 포기하였는데, 세종(世宗) 16년(1434)에 이르러서는 여러 의견을 물리치고 김종서(金宗瑞)를 기용하여 함길도 관찰사(咸吉道觀察使)를 제수하고 북방의 땅을 개척하여 남쪽 지방 여러 도의 백성을 이주하게 하였다. 세종 19년(1437), 지금으로부터 469년 전1)원문에는 470년 전으로 되어 있으나, 469년 전으로 바로잡는다.에 6진【경흥(慶興), 회령(會寧), 종성(鍾城), 온성(穩城), 경원(慶源), 부령】을 설치하여 그 땅을 모두 회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