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燕山君)이 음란하고 잔혹하여 재차 사화(士禍)를 일으키자 현인군자가 점차 줄어들었고, 이에 더욱 교만 방자하였다. 환관 김자원(金子猿)이 기밀을 모두 거머쥐고 여러 악행을 종용하여 여러 도(道)에 기악(妓樂)을 설치하고 운평(運平)이라 불렀다. 기생 3백 명을 선발하여 궐 안에 들였는데, 지과흥청(地科興淸)【임금 가까이서 모시는 기생】, 천과흥청(天科興淸)【임금의 은총을 받은 기생】 등의 명목을 붙였다. 또 채홍준사(採紅駿使), 채청사(採靑使)를 여러 도에 보내 미녀와 좋은 말을 가져왔다. 성균관(成均館)은 놀이터가 되었고, 홍문관(弘文館)을 없애고 사간원(司諫院)을 혁파하고 경연을 없애고 사복시(司僕寺)와 장악원(掌樂院)을 늘렸다. 이러한 음란함과 혹독함과 무도함이 날로 심해져 종묘와 사직이 위태로워지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