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장경 왕후(章敬王后) 윤씨(尹氏)를 세웠으나 중종(中宗) 10년(1515)에 윤씨가 죽었다. 이에 김정, 박상(朴祥) 등이 상소하여 폐비 신씨를 복위하여 무고하게 폐위된 원한을 풀어 주자고 하였다. 그러나 대사간(大司諫) 이행(李荇)과 대사헌(大司憲) 권민수(權敏手) 등이 이를 사론(邪論)이라 하며 반대하고 이들을 감옥에 가두라고 청하였다. 영의정(領議政) 유순(柳洵)과 좌의정(左議政) 정광필(鄭光弼) 등이 화해시키려 하였으나 김정 등이 마침내 벼슬을 빼앗기고 유배되었다. 이로부터 조정 논의에서 싸움판이 열렸다.